마선구 2100호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이름 | 한국어 | |
영어 | Capital Cities and Tombs of the Ancient Koguryo Kingdom | |
중국어 | 高句丽王城、王陵及贵族墓葬 | |
프랑스어 | Capitales et tombes de l’ancien royaume de Koguryo | |
국가·위치 | ||
등재유형 | ||
등재연도 | ||
등재기준 | ||
지정번호 | ||
1. 개요 [편집]
2. 무덤의 구조 [편집]
파일:마선구 2100호 전경.jpg
한변 약 30m 가량의 대형 적석총으로 다른 왕릉급의 초대형 적석총에 비해서는 규모가 다소 작다.[6] 적석총의 형태 상으로는 완성형의 바로 직전 형태 정도에 비견될 수 있다. 기단부의 석재는 우산하 992호정도로 정연하지는 않지만 산성의 성벽쌓기 방법 중 허튼층쌓기처럼 층과 와꾸(...)를 맞추어 쌓아 올렸다.
가장 위의 사진처럼 마선구 2100호분은 기단의 아래까지 조사를 실시하였다. 일반적인 봉토분이 무덤을 만들기 전에 정지(整地) 작업을 거쳐 땅을 고르게하면서 다지는데 적석총의 경우엔 정지작업을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기단의 각 모서리 석재의 아래에 큰 돌을 괴어 지지력을 보완한 것이 보고되었다. 이는 즉 장군총이나 태왕릉처럼 기단의 아래에 정연한 석재로 기초를 둔 형태에 선행하고 있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매장 주체부는 태왕릉, 천추총 이전 단계가 다 그렇듯이 광실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만 제시되어있을 뿐 구체적이지 않다. 수혈식(竪穴式)의 석곽으로 보기에는 장막걸이쇠라는 횡혈식(橫穴式) 석실에 사용되는 장구(裝具)가 확인되고 반대로 보자니 적석 상부 구덩이가 얕아서 쉽게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선구 2100호분은 우산하 992호, 서대총, 칠성산 211호보다는 늦은 적석총으로 보고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유물이 태왕릉 다음으로 많이 출토되었는데 연대가 대부분 4세기의 늦은 편에 해당한다. 와당의 편년 상으로도 권운문 와당이 나오지만 권운문 와당 가운데서 완성된 형태, 즉 늦은 시기에 해당하며, 국형운주[7]의 형태도 비교적 긴 것으로 상술한 3개의 적석총보다는 늦은 형태이다. 따라서 보통은 천추총보다는 빠르고 우산하 992호보다는 늦은 적석총으로 설정하고 있지만 다른 고분에 비해서 확실친 않다. 다만 확실히 4세기 중엽에서 후반에는 걸쳐있다고 의견이 모아져 있다.
한변 약 30m 가량의 대형 적석총으로 다른 왕릉급의 초대형 적석총에 비해서는 규모가 다소 작다.[6] 적석총의 형태 상으로는 완성형의 바로 직전 형태 정도에 비견될 수 있다. 기단부의 석재는 우산하 992호정도로 정연하지는 않지만 산성의 성벽쌓기 방법 중 허튼층쌓기처럼 층과 와꾸(...)를 맞추어 쌓아 올렸다.
가장 위의 사진처럼 마선구 2100호분은 기단의 아래까지 조사를 실시하였다. 일반적인 봉토분이 무덤을 만들기 전에 정지(整地) 작업을 거쳐 땅을 고르게하면서 다지는데 적석총의 경우엔 정지작업을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기단의 각 모서리 석재의 아래에 큰 돌을 괴어 지지력을 보완한 것이 보고되었다. 이는 즉 장군총이나 태왕릉처럼 기단의 아래에 정연한 석재로 기초를 둔 형태에 선행하고 있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매장 주체부는 태왕릉, 천추총 이전 단계가 다 그렇듯이 광실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만 제시되어있을 뿐 구체적이지 않다. 수혈식(竪穴式)의 석곽으로 보기에는 장막걸이쇠라는 횡혈식(橫穴式) 석실에 사용되는 장구(裝具)가 확인되고 반대로 보자니 적석 상부 구덩이가 얕아서 쉽게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선구 2100호분은 우산하 992호, 서대총, 칠성산 211호보다는 늦은 적석총으로 보고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유물이 태왕릉 다음으로 많이 출토되었는데 연대가 대부분 4세기의 늦은 편에 해당한다. 와당의 편년 상으로도 권운문 와당이 나오지만 권운문 와당 가운데서 완성된 형태, 즉 늦은 시기에 해당하며, 국형운주[7]의 형태도 비교적 긴 것으로 상술한 3개의 적석총보다는 늦은 형태이다. 따라서 보통은 천추총보다는 빠르고 우산하 992호보다는 늦은 적석총으로 설정하고 있지만 다른 고분에 비해서 확실친 않다. 다만 확실히 4세기 중엽에서 후반에는 걸쳐있다고 의견이 모아져 있다.
3. 여담 [편집]
4. 같이보기 [편집]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2]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3]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4]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5] 특히 번복할 수 없는 변화의 영향으로 취약해졌을 때 환경이나 인간의 상호 작용이나 문화를 대변하는 전통적 정주지나 육지·바다의 사용을 예증하는 대표 사례[6] 물론 장군총도 한변 30m 정도지만 높이나 완성도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다;;[7] 국화모양의 말 궁둥이 장식
라이선스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문서는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문서의 기여자는 역사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접두어의 N: - 나무위키 사용자, R: - 리그베다 위키의 사용자를 뜻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에서 동일한 문서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